무협/SF

야담소설가 유관필 - 4부

본문

적송자가 유가장에 머문지도 벌써 한달여가 되어간다. 청빈을 강조하는 청성의 기풍과 다르게 호사스런 취미를 가진 적송자는 사천의 어딘가에 맘을 울리는 한끼를 대접하는 장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유가장을 찾았고, 유가장의 음식과 유가장의 사람들에게 매료되었다. 요즘 적송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장주 유관필의 아들 경민이었다. 다섯 살 아이이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데다, 근골은 보통인 대신, 천재소리를 듣던 아버지 유전인지 오성은 보통이 넘어서, 여간 귀여운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뭔가 글과 씨름을 하고 있는 관필을 대신해서 경민을 맡은 적송자가 다섯살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허어, 그래 경민이가 궁금한 게 뭔고?"


"할아버지. 아까 예인이 누나 할아버지가 왔었거든요."


"그래. 이 할애비도 봤지. 짜리몽땅한 늙은이가 하나 있더구나."


"예인이 누나 할아버지가 이렇게 저쪽 담을 휙 날아서 넘어오셨다가요. 또 저기 저 쪽으로 휙 날아가셨는데, 멋있어서요."


"그 까짓거야 아무 것도 아니지. 아니다. 이 할애비가 경민이도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마."


"네?"


"꽉 잡거라. 자 날아간다."




청성이 자랑하는 최절정의 신법 적하미리보를 극성까지 운용해서, 대청에서 날아올라 해선정의 처마를 밟고 4장 높이까지 날아간 적송자의 품에 안긴 경민은 짜릿해 하면서도 무서워서, 그만 오줌을 싸버렸고, 노을빛 공단으로 지은 최고급의 무복에 오물을 묻히고서도 적송자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경민이가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내내 할아버지 최고에요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환갑 진갑이 다 지나고 나서도 아직 마음 깊이 뿌리박은 호승심 때문이었다. 보통 중원의 한 성에선 몇 개의 대문파가 있고, 거기엔 또 몇 명의 최절정고수들이 이름으로 자웅을 겨루곤 한다. 일례로 중원무림의 근간인 소림의 인근에도 여류고수들의 이화장이 있고, 소림 사대금강의 수장 근묵과 이화장의 검화 민명옥은 하남성을 찌르르 울리는 고수들이다. 하지만, 아미파가 있고, 자랑스러워 마지 않는 청성파가 당당히 존재하는데다, 세외운남에선 따를 자가 없다는 칼페인지 뭔가하는 회족놈이 있는 이 사천에선 30년이 넘게 단 하나의 이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천제일 독왕 당철기. 자신보다 겨우 서넛이 연상인 독왕 당철기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성취를 비교당하는 입장이었고, 가문의 온갖 혜택을 받으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당철기를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적송자는 최고라는 다섯살 경민이의 경탄이 진심으로 좋았던 것이다. 




오줌을 싼 경민이를 주방까지 데려가 화영에게 맡기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자신의 객방에 들어간 적송자는 비단으로 지은 자신의 평상복이 모두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청성에 든 지도 꽤나 오래되긴 했다. 사문의 원로로서 자기의 식탐때문에 사문을 돌아보지 못한 죄책감이 든 적송자는 잠시 청성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려고 관필의 문 앞에서 헛기침을 두세 차례를 한 다음 점잖게 말을 건냈다.




"이보게. 장주. 내 잠시 들겠네."


"네. 들어오시지요."




나이에 비해 노숙한 목소리의 관필의 대답은 부드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질 적이었다. 사람됨이 순후하고, 신중한 관필에겐 의외의 모습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잘 싸맨 빈 책에서 한장을 부욱하고 찢어낸, 유관필이 멈칫한 적송자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르신."


"뭘 하고 있었던 겐가?"


"소일거리로 어떤 걸 쓰고 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요."


"어떤 거라니 그게 뭔가"


"실은 사천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취미로 야담집이나 기담집을 읽고 있습니다. 꽤 읽다보니 한 번쯤 써보고 싶어져서요. 그런데 막상 시작을 했더니 다르더군요. 한 서너장을 썼는데, 다시 읽어보니 전혀 재미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꽉박힌 이념이나 사상같은 게 그대로 드러나서 야담집인지, 아니면 인간사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경서인지 구분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 그게 그렇다네. 뭐든 익숙해진 것을 깨버리는 것은 힘이 들지. 그래? 어떤 이야긴가? 주인공이 어디 출신이야. 예인이 고것이 늘 내가 쓸모가 없다 어쩐다 하지만, 장주가 쓰려하는 게 무림에 관한 이야기라면, 76년 성상을 모두 강호에 바친 이 몸보다 많이 아는 사람도 손에 꼽을 걸세. 내 도와줌세."


"실은 그것이, 어르신에게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뭔데 그러시는가? 주인공이 청성파 출신의 살인마라도 된다던가?"




의뭉스런 적송자가 능청을 떨며 한 행동은 관필을 경악시켰다. 적송자는 관필이 구겨서 던진 종이쪽를 태연스럽게 집어들었던 것이다. 무공을 모르는 관필이 절정고수인 적송자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적송자는 서너장에 이르는 관필의 습작을 재빠르게 읽어내렸는데, 전형적인 학자풍의 글을 기대했던 적송자를 완벽하게 무너뜨릴 정도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 글 어디에 자네가 이야기하던 경서가 들어있다는 말인가? 충분히 파격적이네. 글의 필적이 자네의 것이고, 자네가 내 눈앞에서 찢은 것을 내가 주워 읽지 않았다면 난 절대로 이 글을 쓴 사람이 자네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네."


"그렇습니까?"


"그렇네. 그런데, 이 야담의 주인공이 자넨건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어딜봐서 이런 글을 적을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네만, 내가 성도에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네. 성도 제일의 기녀가 최근 자네에게 푹 빠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네."


"그것은 그녀와 제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번 해본 것입니다."


"뭘 말인가?"


"야담을 쓸 생각을 하면서,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시문을 짓거나, 경서를 논하는 것일 것이지만, 그런 것을 사람들이 읽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전 일단 연애전서를 적기로 했습니다."


"연애전서라니?"


"제 아내를 꼬드긴 문장으로 다른 여인들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지를 시험한 뒤에, 그걸로 야담을 쓸 생각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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