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20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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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201(칠백년의 약속)-34




풍운이 무경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지자 란은 기침을 하다가 자신의 면사가 벗겨진 것을 알고 급하게 면사를 찾아보니 약간 떨어진 곳에 찢어진 면사가 있었다. 풍운과 대결할 때 기(氣)의 충돌로 생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모양이다. 란이 얼른 면사를 쓰고 주위를 둘려보니 홍인을 비롯한 무림군 무사들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림군 대부분이 란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풍운이 도망친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란은 길게 한숨을 쉬고 홍인일행에게 갔다. 




“죄송해요. 최선을 다했지만 놓치고 말았네요.” 




란의 말에 홍인과 화원명이 고개를 흔들었다. 란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이 무슨 추태(醜態)란 말인가? 홍인과 화원명은 헛기침을 한다.




“험험~ 홍인님. 그만 부상자(負傷者)들을 수습하고 돌아가죠.” 




화원명의 말에 홍인을 멍하니 있는 무사들을 독려(督勵)해 현장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군사님........조금 전에 그 사내가 마수마랑이 확실한가요?” 




란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서 쉬고 있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란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다. 란이 힘들게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남궁벽과 황보명을 비롯한 칠대세가 가주들의 자제들이었다. 




“보셨으니 아시잖아요. 향상 역용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얼굴은 몰라도 사용하는 무공을 보시면 아시죠.” 


“놈이 수라마령신공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으니 마수마랑이라는 것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다만........놈의 겉에 있던 여인...........제가 잘못보지 않았다면 제갈무경님 확실한데........제가 잘못 본 건가요?” 




란에게 따지듯 질문하는 사람은 남궁벽이였다. 




“무슨 근거로 아가씨라는 거죠?”


“저를 비롯한 우리 칠대세가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의 얼굴을 잘 알고 있죠.”


“사람의 얼굴은 변하기 마련이죠. 특히 어릴 적 모습은 커가면서 많이 변해요. 여기 있는 분들 중에 10살 이후 아가씨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나요. 아무도 없잖아요.” 


“물론 없죠. 10살 이후에 만난적도 별로 없지만 만나도 인피면구나 면사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전에 군사님은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렸어요.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군사님이 그녀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소리는 똑똑하게 들었어요. 군사님........군사님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누가 있죠? 무경님밖에 더 있나요?” 




란은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해서 터질 지경인데 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건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 그게 중요한 문제에요? 그녀가 무경아가씨라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허허~ 당연히 있죠.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무경이 년이 우릴 배신하고 사호팔랑한테 붙었는데 그녀를 모시던 종년이 무림군의 군사로 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남궁벽의 말에 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들 뜻대로 하세요.” 




란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무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홍인에게 가버린다. 철없는 칠대세가 자제들과 싸우고 싶은 생각은 추후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궁벽과 황보명은 란의 뒷모습을 바라며 차갑게 웃는다. 




“황보형........무경 년이 확실했죠. 제가 잘못보지 않은 거죠?” 


“저도 똑똑히 봤어요. 비록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무경이 확실합니다. 거기다가 란이란 년도 그년에게 아가씨라고 불렸잖아요.” 


“참~ 기가 막히는군. 벽력세가의 개망나니 자식 악무룡이 사호팔랑 중 한명이라는 것도 황당한데.........당령과 무경이까지 놈들에게 붙었어요. 황보형도 당령을 보셨죠.” 


“봤죠............당령이 확실합니다. 다 죽어가던 무경이 년이야 너무 많이 변해서 겉모습만 보고는 잘 모르겠지만 당령이야 확실하죠”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에요. 악무룡이야 벽력세가에서도 포기한 개망나니니 벽력세가에 따지기 힘들지만 당령이나 무경은 아니잖아요. 당장 무림맹에 계시는 아버님께 연락해야겠네요. 막말로 우릴 배신한 무경의 종년이 군사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저도 아버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칠대세가의 자제들은 제갈무경과 당령이 풍운일행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무림맹에 있는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사천당가의 당순기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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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자 금이는 군사들이게 철군(撤軍)준비를 하라고 지시하고 금산반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라고 연락했다. 금이의 연락을 받은 금산반는 대륙금위 일부를 이끌고 육철량의 집으로 와서 금이를 만났다.




“장군........정녕 이대로 철군(撤軍)하실 겁니까? 조금만 더 저희들을 도와주시면 안 되는 겁니까?” 




금산반은 철갑기동군의 갑작스러운 철군(撤軍)소식에 눈앞에 캄캄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금이에게 다시 한번 매달려 보는 것이다. 갑옷을 입고 철군(撤軍)준비를 하던 금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상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휴~ 역시 안돼는 거군요?”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죠. 뇌옥에 생포한 사해방 무사들과 반역의 무리로 의심되는 상인들이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병사들로부터 인수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저희들이 특별히 인계해 드릴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오전 중으로 철군(撤軍)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륙금위들이 뇌옥으로 같으니 알아서 잘 할 겁니다.” 




금산반과 금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병사 한명이 급하게 달려왔다. 




“장군........보고 드릴일이 있습니다.” 


“뭐냐?” 


“림산 외곽에서 무림군이 어떤 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무림군?.........그들이 누구랑 싸운단 말이냐?”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상대는 20여명 정도라고 합니다.” 


“참~ 떠나는 마당에 무림군이 말썽을 피우는 군. 병사들 몇 명을 보내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라고 해라.”


“그냥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무림인들 일에 우리가 끼어들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병사가 물려가자 이번에는 대륙금위 한명이 달려와 금산반에게 전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금산반은 대륙금위를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금이가 물어보자 금산반은 대륙금위를 돌려보내고 금이를 돌아본다. 




“무림군과 사호팔랑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군요.” 




금이의 말에 금산반은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예로부터 관(官)과 무림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것이 관행(慣行)이니 금산반도 별다른 말을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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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린무와 마양에게도 무림군과 십이사의 일이 전해졌다. 마양은 폐가(廢家)를 감시하던 사내를 직접 불러 무림군과 십이사의 싸움 결과를 들어보고 혁린무에게 왔다. 




“결과는 어때.” 




혁린무는 마양을 보자마자 결과부터 물어본다.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결과는 아닙니다. 비록 마수마랑이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십이사 모두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병신 새끼들..........어떻게 차려준 밥상도 못 처먹어. 한 놈도 못 잡고 다 놓쳐다는 것이 말이 돼.”


“철저한 준비 없이 너무 의욕(意慾)만 앞서서 그 모양이 된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의욕만 앞서다니.” 


“십이사를 먼저 발견한 것은 예상대로 현원자였습니다. 새벽이 되자 현원자가 무림군을 이끌고 십이사를 공격했는데 무림군 전체가 아니라 반만 이끌고 왔다고 하더군요.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의도 못하고 현원자 혼자 결정하고 자신이 지휘하는 무사들만 이끌고 온 모양입니다. 만일에 현원자가 시간을 가지고 홍인이나 화원명과 충분히 상의한 후 공격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빌어먹을.........되는 일이 없군.” 


“...........” 


“무림군의 피해는 어느 정도래. 설마 그놈들도 아무런 피해도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 


“무림군의 피해는 심각합니다. 나중에 홍인과 화원명까지 무사들을 이끌고 왔는데, 현원자, 홍인, 화원명 등 지휘부 모두가 부상을 입고 무당, 화산 등 칠대세가 무사들을 제외한 구파일방의 무사들 절반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황당하군. 십이사 놈들은 모두 도망갔는데 무림군의 피해가 그렇게 심각하단 말이야.” 


“십이사 개개인의 실력은 무림군보다 월등(越等)합니다. 일대 일로 상대하면 현원자나 홍인정도나 상대가 되겠죠. 그런데 너무 서두르다보니 진형을 갖추고 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쳐들어간 모양입니다. 하여튼 마수마랑이 홍인일행을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십이사가 무림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사상자(死傷者)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심각한 피해를 입었단 말이야? 그 정도로 십이사가 강하단 말이야?”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싸움을 지켜본 놈의 말에 의하면 무림군 무사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원반처럼 생긴 무기와 단검(短劍) 등이 무림군 무사들을 짚단처럼 베어버렸다고 하더군요.” 


“육사의 유성우와 이사의 단검을 말하는 모양이군. 하여튼 잘 됐어. 무림군 절반이상이 피해를 입었다면 놈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아. 마양..........사안을 총동원해서 십이사와 무림군의 동태를 엄밀하게 감시하는 한편 상관장로를 찾아. 상관장로만 찾아서 그들과 힘을 합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승산(勝算)이 있어” 


“알겠습니다.” 




마양은 그길로 사해방의 육철량과 힘을 합쳐 상관장로의 행방을 찾는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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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은 천안통(天眼通)으로 도치일행을 추적하다가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야산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무경이 쉬었다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풍운이 땅에 착지하자 무경이 바닥에 내려와 풍운을 자리에 앉힌 다음 상처를 살펴보았다. 풍운의 상처를 감싸고 있던 천이 붉게 물들어 있고, 천을 벗기자 커다란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다. 




“아프지 않으세요. 어쩜 좋아. 금창약도 없는데.......?” 


“괜찮아. 이정도 상처는 조금만 지나면 혼적도 없이 없어질 거야. 그런데..........이 단검(短劍)이 특이한 걸까?.........아니면 란님의 무공이 높은 걸까?” 




풍운은 자신의 어깨를 파고들었던 란의 단검(短劍)을 들고 있었다. 




“소리비도(小莉飛刀)가 상승무공이긴 해도 금강불괴를 파괴할 정도는 아니에요. 란의 무공이 높은 거죠.”


“제갈세가 무공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 란님이 사용한 무공은 모두 제갈세가 무공이었어. 제갈세가는 예로부터 지혜의 가문이었지 정통무가는 아니었잖아. 그런데 란님은 나와의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어. 오히려 나를 앞도 했어.”


“란도 하늘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운랑처럼 차크라를 각성하고 선천강기를 응용(應用)할 수 있어요. 또한 란은 운랑이 사용하시는 무공을 자신의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고 있어 운랑의 다음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대처했기에 운랑과 대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었을 거예요.”


“쩝~ 내가 익힌 무공을 모두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녀도 나와 같은 부류라는 말이지. 그럼 그녀에게도 내면세계라는 것이 있나?” 


“잠깐만........말씀은 천천히 하시고........우선 상처부터 치료해요.” 




무경이 풍운의 상처를 깨끗하게 닫아내고 자신의 치마를 찢으려하니 풍운이 무경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경황(驚惶)중이라도 여자가 자기 옷을 마구 찢으면 되겠어. 그것도 겉옷도 아니고 속옷인데 말이야.” 




풍운의 말대로 풍운 무경은 잠자다가 뛰쳐나와 겉옷도 없이 속옷만 입고 있었다. 풍운이 피에 젖은 자신의 상의를 벗으니 품속에서 작은 보자기가 떨어졌다. 풍운은 보자기를 한쪽에 두고 상의를 찢어서 상처를 동여맨다. 




“운랑........향상 그 보자기를 가지고 다니시던데.......보자기에 뭐가 있죠.” 




무경은 풍운이 향상 지니고 다니는 보자기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풍운은 보자기를 열어 무경에게 내밀었고, 무경이 보자기 속을 보니 한권의 책자와 은자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음양도라는 책으로 내가 익힌 음양검법과 음양비를 이 책에서 보고 익혔어.”


“고구려의 국선도, 백제의 음양도, 신라의 원화도.......예전에 야사(野史)로 읽은 기억이 있어요. 그 무공들이 문서상의 기록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존재했군요.” 




무경은 예전에 조선의 역사를 공부할 때, 정사와 야사를 모두 잃었고 그중에서 백제, 신라, 고구려의 역사와 그들의 무공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야사에 적힌 무공들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던 무공인 모양이다.




“당연히 존재하지. 내가 음양도를 익혔고, 천유가 국선도를 익히고 있어.” 


“그래요? 그런데 이 은자는 뭐죠? 무척이나 오래된 은자 같은데.......?” 


“벽궁세가의 지하에 있던 은자야.” 




풍운은 벽궁세가와 은자의 내력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은자가 벽궁세가 초대가주에게 도움을 받은 장사치들이 주고 갔다는 은자로 나중에 이 은자를 근거로 장사치들에게 군자금은 받으라고 했단 말씀이죠?” 


“그렇게 쓰여 있었지. 물론 칠백년 전의 일로 그 장사치들이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고, 설혹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야. 더구나 백제는 망했어. 백제의 부흥을 위한 군자금으로 쓰기에는 이미 늦었지.”


“장사치들의 생명은 신용(信用)이에요. 그들이 만일 지금도 장사를 하고 있다면 약속을 잊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만 운랑의 말씀대로 이미 망해버린 백제의 부흥을 위해 군자금을 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군요.” 


“사실 내 물건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장사치들을 찾을 생각도 없어.”


“그런데 왜 향상 지니고 다니시는 거죠?” 


“아가씨에게 전해드려야 할 물건이니까? 아가씨가 찾으시면 언제라도 전해드려야 하니까 가지고 다니는 거야.” 




풍운의 말에 무경은 가슴 한쪽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지금은 개개인의 사정으로 풍운의 겉에 없지만 풍운에게는 여자가 많다. 대부분 무경 자신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미모와 배경을 가진 여인들이다. 사사천교의 교주인 하후소하, 천마마련주의 손녀인 초벽하, 장강수로십팔채 총채주의 딸인 조옥선.........모두가 무림사봉(武林四鳳)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막강한 배경을 가진 여인들이다. 또한 지금은 비록 멸문의 화를 당했지만 풍운이 모시던 벽궁수혜, 같은 십이사의 일원이었던 궁아라도 있다. 무경은 그 많은 여인들 중 한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무경은 머리까락을 쓸어 넘기며 머리를 흔들었다. 풍운이 수혜를 위해 책과 은자를 지니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싸늘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풍운이 수혜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며, 그에게 여자가 많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남자이기에 그런 생각은 잊어야 한다. 지금 풍운과 함께 있는 여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는가? 무경은 현명한 여인답게 풍운이 눈치체기 전에 얼른 속마음을 감추고 화제를 바뀐다. 




“은자를 준 상인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칠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장사를 해온 장사꾼은 흔치 않으니 조사를 하면 금방 찾을 수 있겠죠. 아참~ 대륙상회도 그 범주에 들어가겠네요. 칠백년 전부터 대륙상회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들 회원들 중에 칠백년 이상 장사를 한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있기야 있겠지만 굳이 찾을 필요는 없어. 내 물건도 아니고 아가씨가 알아서 하시겠지. 그건 그렇고.........란님 말이야. 란님에게도 내면세계가 있어. 그래서 정령들의 도움으로 차크라를 각성한 거야.”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란의 금제로 풀기 위해 독약 비슷한 약을 먹이셨는데 그때마다 란은 내면세계라는 곳에 가서 정령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차크라를 각성했다고 하더군요.” 


“란님의 내면세계에도 정령들이 있다는 말이군.”


“그런데 그걸 왜 물어보시죠. 혹시 조금 전의 일과 관련이 있나요.” 


“무슨 일?” 


“소리비도가 본가에 전해오는 무림 최고의 비도술이라고 해도 운랑이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운랑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단검(短劍)이 날아오는 것도 모르시고 란만 바라보고 계셨어요. 그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풍운은 코를 찡긋거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의 운명.........운명의 끈.......참~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어. 또한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 그런데 란님의 얼굴을 보자 운명이라는 것이 참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어.” 


“운. 명. 이.........더럽다고 하셨어요? 왜 그렇게 심한 말씀을 하지죠. 란과 운랑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입니다. 그건 우리가 거역할 수 없어요.” 


“하늘이 정해주었으니 겸허하게 받아들여라........이런 말인가? 하하하~ 그건 아니야. 내가 싫은데 하늘이 정해주었다고 무조건 받아들어야 하는 건가? 상대가 싫다는데 무조건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가? 사람의 인연이란 억지로 안 되는 거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해야만 사랑이 싹트고 인연이 되는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하늘이 정해주었다고 해도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럼 운랑의 뜻에 따라 선택하시면 되는데 왜 운명이 더럽다고 하시는 거죠?”


“나의 내면세계에는 두 명의 정령이 있었어. 나를 지켜주는 정령과 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전해주고 물거품처럼 사라진 정령이 있었지. 그중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해주고 간 정령이...........................바로 란님의 모습이었어.” 


“서..........설마........내면세계에 있던 정령이 란과 똑같은 모습이었단 말씀이세요?” 




풍운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한참 후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내가 정령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그녀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몸매의 굴곡과 느낌까지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녀와 나는 한 몸이 되었거든. 그런데 란님이 나를 위해 희생한 그 정령과 똑같은 거야. 이것이 하늘의 운명이라면.........이것이 하늘이 정한 안배라면.........정말 황당하지 않아.” 




무경은 할말이 없었다. 풍운이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정령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그녀의 느낌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란과 정령의 모습이 똑같다고 했으며 정령과 한 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럼 무엇인가? 내면세계에서 풍운과 란의 형상을 한 정령은 몸을 섞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또 이런 생각도 들더군. 나의 내면세계에 란님의 모습을 한 정령이 있었다면.........란님의 내면세계에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정령이 있지 않았을까?.............하늘은 서로의 모습을 한 정령을 내면세계에 심어주고.........두 사람이 현실세계에서 만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지는 않았을까?...........서로의 의사와 관계없이.........당사자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하늘이 결정해서.........너희들은 이미 부부(夫婦)라고 정해 놓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니 운명이 더럽다는 거야. 무경은 어떻게 생각해?” 


“휴~ 제가 대답할 질문이 아니에요. 하늘이 그렇게 정했다면 따라야겠죠.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이거뿐이에요. 모든 결정은 운랑의 말씀대로 스스로 하셔야합니다?” 


“쩝~ 그렇겠지. 그녀와 내가 결정할 문제겠지. 그만하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일단 도치일행을 찾아보자.” 




풍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무경을 안으려하니 무경이 살며시 풍운의 품속을 빠져나온다.




“조금만 도와주시면 혼자갈 수 있어요. 자요.........손만 잡아주세요.” 




무경의 말에 풍운은 피식 웃으며 무경의 손을 잡고 도치일행의 흔적을 쫒아 그들을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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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일행은 무림맹의 포위망을 뚫고 폐가(廢家)를 빠져나와 림산 외곡에 있는 흑도연합군을 찾아갔다. 림산에 너무나 많은 감시자들이 있기 때문에 안전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남들에게 발각될 것이라면 흑도연합군과 함께 있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도치일행이 흑도연합군이 숨어 있는 야산 초입에 들어가자 은색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나타났다. 바로 천마마령대의 은마마령대다. 곽지향은 얼른 앞으로 나서 은마마령대와 잠깐 이야기했고, 도치일행은 은마마령대의 안내를 받아 흑도연합군의 본진으로 갔다. 




한편 도치일행의 뒤를 추적한 풍운과 무경도 그들이 남긴 흔적을 쫓아 흑도연합군과 함유했다. 풍운과 무경이 도착하자 초하벽이 반갑게 풍운을 맞이했다. 




“어서와~ 고생 많았지. 어라........처남 다쳤어.” 




초하벽은 풍운이 상의를 벗고 있으며 어깨에 감은 천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약간.........심한 부상은 아니야. 그것보다 도치와 악무룡은..........” 


“둘 다 무사해. 정말 괜찮은 거야. 치료하지 않아도 돼.”


“치료는 천천하고 우선 도치이행이나 만나보자.”


“아참~ 내 정신 좀 보게 무경님 안녕하세요.” 




초하벽이 인사를 하자 무경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초하벽은 풍운과 무경을 자신의 군막으로 안내했고 풍운이 군막에 들어가 보니 도치와 악무룡을 제외한 나머지 십이사가 모두 모여 있고 그들의 앞에는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들 식사도 못하셨다고 해서 식사부터 준비했어. 자~ 처남도 왔으니 우선 밥부터 먹죠.” 




풍운은 십이사들을 돌아보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자 음식이 치워지고 차가 준비되더니 사사천교와 배교사람들도 군막으로 들어왔다. 




“다들 모이셨군요. 우선 앉으세요.” 




모든 사람들이 인사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초하벽이 입을 열었다. 




“대충 들으셨으니 회의를 길게 끌지 말고 간단하게 끝내죠. 처남.........무림군을 어떻게 할까? 잡놈의 새끼들이 죽으려고 감히 우리 처남을 건드려........이번 기회에 아예 무림군 놈들을 쓸어버릴까? 대답만 해. 내가 가선 쓸어버릴게.”


“농담이겠지?”


“농담이라니..........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뱃가죽에 기름기만 잔뜩 끼고, 대가리에 똥만 든 백도 새끼들은 혼나 봐야해.” 


“험험~ 처남.........여기에 백도 분들도 있어. 말을 가려서 해.” 




풍운의 말에 초하벽은 무경과 당령 등을 돌아보며 멀쑥하게 웃음 짓는다. 




“아아~ 여기 계신 분들은 열외입니다.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무경과 당령은 초하벽의 말에 흑도무림인들이 백도무림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었다. 40여년의 세월을 백도무림인들에게 눌려 지내온 흑도무림인들과 백도무림인들 사이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림군이 우릴 공격했다고 우리까지 무림군을 공격하면 안돼. 우리의 적(敵)은 배화교지 무림군이 아니야. 그건 논쟁할 가치도 없는 문제야.” 




풍운이 자르듯 이야기하자 초하벽은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하여튼 성인군자(聖人君子)가 따로 없다니까? 알았어. 그 문제는 접어두자. 이번에 무림군 놈들도 혼이 났으니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겠지. 다음 문제..........대륙상회일은 어떻게 할 거야. 계속 그놈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을 거야.” 




흑도연합군과 십이사일행이 앞으로의 일에 논의하고 있는데 그들이 모여 있는 군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로 흑도연합군과 곽지향일행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대륙상회 상인들이 십이사가 찾아왔다는 소식에 군막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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